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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쓰는 날

제주도

일단 비행표를 먼저 끊었다

생각만 하다가는 절대 못갈거 같아서
그냥 무작정 표를 끊었다

 

3박 4일 생각하다가

이날은 비행기표 비싸니까 하루더 있자

여기도 가봐야 하니까

하루만 더,
하루만 더,

그렇게  7박 8일이 되었다

 

그리고나서 주위에 말했더니

"지금 니가 여행갈때냐"

"너무 길게 가는거 아니야?"

"혼자가면 위험한거 아니야?

 

다들 걱정 한웅큼, 불안 한웅큼씩 안겨주었고

두려움을 자라게 하는 좋은 거름이 되었다

결국 제주도 친구집에서 지내기로 하고
모두를 안심시켰다

맙소사! 이건 내가 생각한 여행이 아니다!

친구는 나를 챙겨주기위해 자꾸 저녁 약속을 잡았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유롭게 이동하지 못했다

열심히 여기저기 다녔던 것 같은데

사실 기억이 잘나지않는다

 

밥먹다가 국에서 개털이 나왔지만
꾹 참고 먹었던 기억,

너무 추웠지만 기름보일러라 말못하고

덜덜 떨면서 잤던 기억이 전부다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했다

나를 모르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그런데 신기할 만큼 어울리는 게 힘들었다

숙소 앞에 있는 술집으로 자리를 이동했지만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저사람은 무슨 목적일까?

이런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말하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카페하면서 늘 해왔던 대로
웃어주며 질문해주고 이야기 들어주는 일

내가 제일 잘해왔고 잘한다고 생각했던 그 일

너무나 지겹게 해왔던 그 일이 하기 싫어졌다

말하기가 싫어지니 웃기조차 힘들었다

 

그렇게 그 자리를 나와
철저하게 혼자가 되기로 했다


목적지없이 그냥 가고 싶은 곳을 가거나

그앞까지 가서는 내리지 않았던 적이 더 많았다

밥은 먹지 않거나 차안에서 먹을 수 있는걸 먹었다

특정한 장소에 들어가기보다 주로 이동을 했고

차안에 있을 때가 제일 편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지독하게 외롭기 시작했다

가고 싶은 곳이 생겼고 하고 싶은 것이 생겼는데

같이 할 사람이 없다는 게 견딜 수 없이 울적했다  

무엇보다 말이 너무 하고 싶어졌다
혼잣말까지 해댔으니 말 다했다

 

그렇게 혼자가 되어보니 내가 보였다

사업에 실패했고 사람들의 비난을 견딜 자신이 없어

제주도로 도망친 사실을 인정할 때가 온것이다

 

실패가 두려운 건
단지 소득이나 지위를 잃어서가 아니라

사람들의 판단과 비웃음 때문이라고 했다

 

'내가 제대로 하는 게 있기는 하는 걸까'

한없이 내 자신을 미워하고 원망하는게
하루 일과였고 숨고 싶었다

그렇게 간곳이 제주도였고 연락두절을 외치며
실컷 숨어버렸다

그러자 갑자기 밖으로 나가고 싶어진것이다

 

사실 거창하게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렇게 밖으로 나온다고 해서

갑자기 내 삶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사업실패를 거름삼아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만약 내가

제주도에 가지 않았다면,

사업에 실패하지 않았다면,

사업을 하지 않았다면,

더 오랜 시간 나는 내가 무엇을 추구하는지 모르고 지냈을 것이다

 

간절히 원해도 못하는 사람이 있는데

원하지도 않았는데 기회가 찾아왔고

너무나 서툴러서 실패했을 뿐이다

그렇게 잃어봄으로써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늘 옳은 선택을 한다고 믿어보기로 했다

사업은 실패했지만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또다른 시작이라고

사랑이 끝났다면
그것은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과정이라고

 

이 모든 것은 내가 선택한 대로 흘러갔고

나는 늘 옳았다

더 좋은 선택이란 없다
그 과정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을 것이고

앞으로의 나도 없을 것이다

 

나는 성공한 사람보다 가치있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내가 행복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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